둔갑술의 귀재 사회/정치/경제

 정치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 노력해왔던 것은 거기에 관심과 시간을 쏟는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지만 알 정도의 최소한의 관심만 가져왔었습니다. 그리고 왠만해서는 정치에 대한 글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이렇게 끄적대기라도 하는 이유는 이렇게라도 생각을 쏟아놔야겠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책임자이면서 피해자로 둔갑한 박근혜

 세월호 참사는 온갖 비리와 구조작업에서의 무능이 결합한 인재임을 누구나 다 알고, 국가적 분노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해경에 의해 구조된 선원들과 침몰하기 전 바다로 뛰어들었던 탈출자들을 제외하고 선내방송의 지시대로 '가만이 있었던' 사람들 중에 구조된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이후 다양한 언론들에서 드러난 정보에 의하면 해경은 세월호 선내에 갇힌 많은 사람들에 대해 어떠한 구조작업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결국 302명 또는 그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한 대형참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안전을 최우선 한다며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꿨지만 구조를 위한 시스템은 현장에서 무용지물이었고, 현장 지휘관은 사실상 지휘의 권한도 없었습니다. 정부는 부처마다 5개의 종합상황실을 만들었고, 각각 다른 정보를 발표해서 언론과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으며, 현장에서는 같은 보고를 5번씩 하게 만듦으로써 구조작업에 쏟아야할 역량을 낭비하게 만들었습니다. 누가 지휘를 해야하는지, 누가 책임을 져야하는지를 교통정리를 해주는 사람도 없어서 우왕좌왕하며 열심히 일하는 척 하기에 바빴습니다.

 대통령은 현장을 방문해서 현장을 둘러보고 상황에 대한 보고도 받았지만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구명조끼를 입었는데 구조하기가 그렇게 힘듭니까?'는 엉뚱한 질문/질책을 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의 역할은 '특공대를 투입하라'는 식으로 구조를 직접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부서별로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정해서 부처간의 혼선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구조작업을 신속하게 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자원과 인력을 막힘없이 지원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고, 구조작업에 투입되는 핵심 인력들과 지휘관들이 언론에나 상부기관에 보고하느라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않도록 여건을 만들어줘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한 것입니다. 따라서 박근혜는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통령이 의례 지는 도의적인 책임이 아니라 실질적인 책임이 있는 사람입니다. 즉 세월호 참사를 통해 박근혜가 가지고 있는 대통령이라는 직책과 역할에 대한 이해의 수준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 뒤늦게 대국민 사과를 했습니다. 팽목항 현장에서 오열하고 울부짖는 실종자와 희생자 가족들 앞에서도 흘리지 않던 눈물을 담화 후반에는 흘렸습니다. 그 후로 신기하게도 세월호의 피해자는 희생자들의 가족이 아니라 박근혜가 됩니다. 담화의 본질이었던 사과는 희미해졌습니다.


정권의 위기를 국가의 위기로 둔갑되다.

 300여명의 사람이 불의의 사고로 갑자기 희생되는 일은 국가적 슬픔입니다. 더군다나 그 원인이 부패한 사람들의 탐욕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슬퍼하면서도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적 관점에서 생각을 해보면 일반인 300여명이 죽는다고 국가가 위기에 빠지지 않습니다. 대부분 학생들이었고 국가에 대체 불가능한 중책을 맡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국가가 위기에 빠지는 일은 전쟁이 일어나거나, 어마어마한 천재지변이 일어나서 국가의 기능이 상당부분 정지되거나, 97년의 IMF 사태처럼 국가가 부도위기에 몰리거나, 국가를 운영하는 주요 인사들이 한꺼번에 죽는다거나 여러 상상할 수 있는 비극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들 중에 세월호 참사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새누리당이 선거 때 했던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해달라'는 명백한 허위입니다.
 다만 단 한 명의 생명도 구조를 못하고 모두 수장시킨 정권은 그 무능함 때문에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 위기에 빠질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세월호 참사는 정권의 위기이지 국가의 위기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은 박근혜의 눈물을 앞세워 정권의 위기를 국가의 위기로 둔갑시켰습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것이지만 눈말 앞에서 이성이 힘을 잃었고, 비논리는 통했습니다.


준비부족과 무능의 노출

 박근혜는 대선 때 '준비된 여성대통령'이라고 캐릭터를 정했습니다. 그것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15년여의 정치 경력과 퍼스트레이디 대행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정치권에 있었다고 누구나 정치를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국회의원 시절 청문회를 잘했다거나 좋은 법안을 많이 발의했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별다른 활약이 없는 축구선수를 단지 오래 뛰었다는 이유로 좋은 선수로 칭한다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잘 보이는 위치에서 활동한다면 아무리 노출하지 않으려 해도 실력이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집권 초기에 수많은 인사참사와 정부 구성에서의 난맥을 겪으며 얼마나 준비가 부족한 사람인지를 노출했습니다. 대선 때 했던 주요 공약들을 파기 또는 후퇴시키며 얼마나 약속을 가볍게 생각하는지도 노출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위기에 대응하는 능력이 얼마나 부족한지도 노출했습니다.

 아직 집권 초반이고 그런 부족한 점들이 한 두번씩밖에 노출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반복해서 노출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지지자들에게는 5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정치의 달인으로 각인되어 있지만, 계속해서 무능을 노출한다면 그렇게 단단했던 지지하는 마음도 부서지고 무너질 날이 올 것입니다. 다만 세월호처럼 인명이 상하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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